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성 라이온즈/사건사고 (문단 편집) === [[장효조]] [[트레이드]] 및 홀대 논란 === [[장효조]]는 80년대 삼성 라이온즈의 간판 타자로, 삼성 라이온즈 선수 가운데 가장 최초로 레전드라 불릴만한 선수였다. 하지만 그는 공교롭게도 한국시리즈 때마다 자주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이때문에 [[김시진]]과 더불어 삼성이 우승을 하지 못하는 원흉으로 꼽혔다. 게다가 장효조는 매시즌 연봉 협상 때마다 삼성 구단과 상당한 마찰을 일으켰다. 1988년 선수협 파동까지 일자 삼성은 팀의 레전드인 장효조와 김시진을 롯데의 [[최동원]], [[김용철(야구)|김용철]]과 맞트레이드한다. 장효조가 은퇴한 후에도 팀 레전드인 장효조에 대한 삼성 구단의 홀대와 외면은 이어졌다. 장효조는 삼성 구단에서 부름을 받지 못했고, 롯데 등에서 계속 코치 생활을 했다. 2000년 장효조가 삼성의 타격코치가 되었으나, 이는 장효조와 절친했던 [[김용희]] 감독이 장효조를 타격코치로 써야겠다고 강하게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김용희는 [[김응용]]을 영입하기 전 땜빵 감독이었기 때문에 장효조도 1년 쓰다가 버릴 계획으로 영입한 것에 불과했다. 실제로 2000 시즌 후 김용희와 장효조는 같이 경질되었고, 삼성 구단은 김응용 사단으로 재편된다. 이후 삼성팬들은 팀 최초의 레전드인 장효조를 코칭스태프로 기용해달라고 끊임없이 구단에 목소리를 높였지만 구단은 10년간이나 그를 다시 코치로 기용하지 않으면서 이를 외면했다. 2000년대 전반 장효조는 부산 지역 신문에 야구해설위원으로 위촉된 것으로 겨우 야구와의 끈을 이어갈 수 있었다. 2004년 부산일보의 장효조 인터뷰가 나가며 당시 사실상 쉬고 있는 장효조의 근황이 알려진 후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삼성은 2005년 장효조를 스카우트로 영입했다. 그러나 삼성은 끝내 그를 코치로 기용하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삼성은 언론 기자들에게 장효조가 워낙 성격이 모난 사람이기 때문에 코치로는 부적합하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스카우트 시절 장효조는 삼성 경기가 있을 때 마다 기자실에서 기자들에게 경기 해설을 하며 현장 복귀 의지를 나타내곤 했다. 심지어 장효조는 2008년경 한 신문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격이 모나다는 구단의 지적을 의식해서인지, 최근 성격을 고치려고 많이 노력 중이라면서 다시 코칭 스태프로 기용될 실낫같은 가능성에 대한 의지를 엿보이기도 했다... 이당시 스카우트의 처우는 대단히 열악했고, 훗날 장효조는 스카우트 시절 너무 고생을 해서 병을 얻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야구계의 문화가 각 팀의 레전드를 대우해주는 분위기로 흘러가자 삼성은 압박을 받았다. 삼성은 장효조 뿐만 아니라 다른 팀레전드인 [[이만수]], [[김시진]]과도 껄끄로운 관계였다. 당시 삼성은 팀의 레전드로 [[류중일]]을 밀어주고 있었으나, 커리어가 커리어인지라 한계가 있었다. 최초의 팀 레전드인 장효조에 대한 처우에 대한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던 삼성은 결국 2010년에야 장효조를 2군 코치로 기용했다. 그러나 불과 1년여 후에 장효조는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